SO LONG KOREA(동방의 등불)
작가 김 우 영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과 거스 히딩크(Guus Hiddink)일행을 태운 네덜란드(Netherlands.낮은 땅) 소속의 항공기가 암스테르담의 스키폴(Schipol) 공항을 출발하여 11시간이 지난 후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이를 때 맞추어 대한민국의 방랑객 김삿갓과 통일축구협회 정몽쟌 회장단도 따듯하게 이들을 영접했다.
“어서오시오. 히딩크 감독님!”
“땡큐--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김삿갓 선생.”
“환영합니다. 히동구 감독님.”
“아, 하멜 선생도 오셨구려.”
“오우, 원더풀 쩡몽짠 회장님. 반갑습네다.”
히딩크 감독 일행의 한국 방문은 다음날 열릴 한국과 북한의 친선 축구경기 관전과 통일축구협회의 기술고문 계약, ‘다시보는 월드컵 전 아! 대한민국’ 화보집 테이프 커팅과 각종 광고계약 등으로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잠시 내한 來韓 하던 터 였다.
9월 4일 인천공항 입국장은 그야말로 입추에 여지가 없을 정도로 200여명이 넘는 취재진과 축구협회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히딩크는 함께 간 정몽쟌 회장과 김삿갓의 성화에 못이겨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니 그 보다는 끈질긴 기자들의 질문에 못마땅해하던 그의 연인 '엘리자베스'가 소매를 잡는 바람에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며 여유 있게 일어섰다.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리는 험악한 분위기를 보면서 그는 말했다.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So Long! 다시 봅시다.“
“짝--짝--짝--”
미리 준비된 공항내 기자회견장에서 간단한 입국 소감을 마친 히딩크 일행은 국내에 있을 때 머물던 하얏트 호텔로 직행했다. 호텔로 가는 차내에서 김삿갓과 정몽쟌 회장에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이 엄청난 태풍으로 피해를 많이 입었다는데 소식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나도 돕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얏트 호텔에 도착한 히딩크는 지난 재임 시절에 이미 낯익어 친구가 되어버린 호텔 종업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함께 간 연인 엘리자베스도 따듯한 환영 인사를 받았다. 뒤이어 젊은 여성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그들과 어깨동무하며 기념 사진촬영을 했다. 옆에서 질투의 눈길을 보내던 엘레자베스에게 히딩크가 약을 올렸다.
“아가씨, 좀 더 내 곁에 가까이 와요.”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기자들에게 큰 소리로 죠크를 한다.
“저 사진 좀 찍어서 크게 신문에 내어요.”
이때 옆에 있던 히딩크의 절친한 친구인 김삿갓이 큰 소리로 말한다.
“이 친구들 여기까지 와서 사랑싸움 하나?”
“하하하--허허허--호호호--”
히딩크는 두 달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지난 7월 네덜란드 PSB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뒤 처음으로 남북통일 축구 관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히딩크는 이런 저런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9월 4일 오후에는 백두산 카드사와 계약 조인식을 가졌다. 히딩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취재진이 200여명이나 모인 자리였다. 금으로 된 모형 ‘한라산 신용카드’를 받은 히딩크에게 사회자가 말했다.
“히딩크 감독님, 이 카드는 실제로 쓸 수 는 없습니다.”
하고 우스갯 소리를 말 하자 그의 즉흥적인 멘트는 또 발휘되었다.
“한라산 백록담에 녹여서 쓰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허허허--”
“녹인 금을 팔아 경비를 만들어야지. 그 돈으로 우리 천하의 김삿갓 선생, 하멜 선생하고 대-한민국 삼천리 팔도를 두루 주유천하나 하며 유람이나 하지 뭐.”
옆에서 늘 붙어 다니던 친구 김삿갓이 그냥 넘어갈 위인이 아니지.
“어히, 천하의 히딩크 감독. 까불지마. 나는 당신 말대로 My Way야.”
그 옆에 있던 하멜도 한 마디 한다.
“맞아 나도 My Way 야. 제주도 삼방산이 바라보이는 제주도 대정현大靜縣 으로 말이야!”
"짝짝짝---짝짝짝---“
천하의 삼각편대인 히딩크와 하멜, 김삿갓이 주고 받는 세기적인 고담준론 高談峻論으로 하여 장내는 다시 한번 박장대소가 번져 행사장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또 그 뿐이 아니었다. 히딩크가 백두산 카드사의 계약 내용을 낭독하기 전에 싸인을 하였다. 그러자 사회자가 말렸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직도 줘야 할 금으로 만든 한라산 신용카드가 또 있어요?”
히딩크는 농담으로 머쓱한 분위기를 풀었다. 계약식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는 히딩크는 말했다.
“하멜 선생, 바쁘다 바뻐. . . . . . ”
“하하하--허허허---”
“언제 한국말 배웠습니까?”
“한국말로 서당개 삼 년에 풍얼을 하고 식당 개 3년에 개 앞 발로 라면을 끓인다고 하던데요 뭘.”
“ 참 내, 아는 것도 많네요.”
하고 말해 일행은 웃었다. 이날 저녁에는 히딩크와 엘리자베스 일행은 아주 조용히 아주 너끈하게 한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만찬을 갖고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다음날. 히딩크에겐 바쁜 하루였다. 히딩크는 휴식을 위해 비워두었던 이날 오전에 경기도 파주 트레이닝센터를 찾아 남. 북 통일 축구를 앞두고 연습중인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봤다. 박항선 감독과 만나 히딩크는 힘차게 포옹을 한 뒤 어깨동무를 하고 그라운드를 함께 걸으며 두터운 우애를 과시했다. 히딩크는 남.북 통일축구 경기를 함께 벤치에 앉아서 봐도 괜찮겠느냐고 박항선 감독에게 양해를 구했다.
히딩크는 사진기자들이 자신을 더 잘 잡기 위하여 그라운드 한 쪽으로 몰리자 한 방송사의 카메라 받침대를 빼앗아 뒤쪽으로 밀쳐내기도 했다. 히딩크는 그 답게 소리를 치며 표호를 했다.
“지금은 선수들이 제일 중요하니 그 점을 염두해 주세요.”
또 그는 이어 말했다.
“난 이런 일이 있으면 화를 참을 수 없다.”
옆에서 지켜보던 하멜이 말했다.
“성질 머리하고선 쯧쯧쯧---”
그러자 엘리자베스도 뒤에서 거든다.
“저이는 나와 다닐 때도 저 처럼 신경질을 잘 부려요. 저이가 얌전히 순응할 때는 딱 그 시간 이예요.”
그러자 김삿갓이 묻는다.
“그게 언제인데요. 엘리자베스?”
“저이의 잠자리 시간이예요.”
“훗훗훗---하하하 --- 알만하다. 히딩크 선생. 그 나이에 벌써 쯧쯧쯧---”
이어 오후 시간. 코리아나 호텔에서 통일일보 사장이 초청한 오찬에 참석했다. 엘리자베스는 미리 `네덜란드 상징` 인 오렌지색 옷을 입고 나왔다. 물론 우리의 천하에 김삿갓은 죽장에 삿갓 쓰고 승포자락 휘날리며 나오고, 하멜은 그 옛날 제주도 대장현 표류 때 걸친 누우런색 두건에 장포자락, 댓님을 단단히 맨 차림으로 나왔다. 그야말로 세기적인 월드컵 패쎤쑈가 아닐 수 없다. 히딩크가 기염을 토하며 하는 말.
“내 자서전이 한국말로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짧은 시간에 내 모든 것을 자서전으로 멋지게 만들어준 통일일보에 감사합니다.”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죽장에 삿갓 쓴 김삿갓이 말했다.
“그으럼 우리나라의 인쇄수준을 뭘로 보고 까불어!”
“맞아 맞아. 역시 대-한민국이야! 대-한민국!”
히딩크는 또 이 자리에 참석한 가수 윤도한 에게 말했다
“당신의 응원가 덕분에 한국 선수들이 큰 힘을 얻어 감사합니다.”
“저도 영광이지요. 히딩크 감독님.”
서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주장인 홍명봐에게 전한 자서전에는 싸인 뿐이 아니라 한찬 동안 고심한 끝에 감사의 글을 적어 주기도 했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이 고마움 잊지 않겠습니다.”
히딩크는 자리를 옮겨 남북생명과 종신보험 계약식에 참석했다. 이어 오후 늦게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다시보는 월드컵 -2002년 6월``` 아! 대~한민국` 전 테이프 커팅 행사에 참석했다. 히딩크는 이 자리에서 많은 선수들인 `월드컵 제자` 들과 재회했다. 그는 특히 안정연 에게 어깨를 두둑이며 말했다.
“해외 진출 문제가 잘 안 풀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곧 희소식이 있을 것이다.”
‘’아암,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
김삿갓과 하멜이 한 마디씩 하며 돌아가며 격려를 했다. 2002 한. 일 월드컵을 총 결산하는 전시회에서 태극 전사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고 4,500여장의 사진을 살펴본 히팅크는 자신의 ‘어퍼 컷 세러머니’ 사진 앞에서 똑 같은 포즈를 취해 보이기도 했다.
“오오, 대-한민국-- 오오, 대-한민민국.”
“야호, 2002년 월드컵이여!”
히딩크는 이날 공식 행사가 끝난 뒤 기절초풍(!) 할 사건이 발생했다. 행사 진행 요원을 가장한 한 정체불명의 맹열 여성으로 부터 열정적인 기습 키스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크흐, 그 -- 입술이여!”
“어휴, 멋져라. 나에게 키스해줄 여성은 없는가?”
“키히히-- 히드득--”
하멜과 김삿갓이 약 올리는 가운데 히딩크의 영원한 연인 엘리자베스가 쌍심지를 키고 열을 냈다.
“그이치--어떤 여성이기에 이 처럼 나를 속상하게 한담. . . . . .?”
“참으세요, 엘리자베스 여왕님이시여.”
그 바람에 히딩그 입술에는 빠알간 루즈가 잔뜩 묻어나 연인 엘리자베스의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촌극을 벌였다. 하멜과 김삿갓이 키드득 거리며 입을 막고 놀렸다.
이날 저녁에는 신라 호텔에서 열린 남.북 통일 축구 만찬에 참석했다. 9월 6일 오전 통일축구협회와 기술고문 계약을 맺은 히딩크는 협회를 통하여 얼마간의 수재의연금도 전달했다. 히딩크는 이어 통일일보 사장과 정몽쟌 통일축구협회장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 했다.
히딩크가 서명한 책을 받은 대한민국 대통령은 반가히 포옹하며 말했다.
“책은 이미 하나 샀지만 특별히 히딩크 감독님의 싸인이 담긴 책이기 때문에 소중히 간직하겠어요. 고마워요. 대한민국민의 영웅 , 우리의 히딩크 감독님이시여!”
히딩크는 오후엔 엘리자베스 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스쿼시를 즐겼다.
히딩크는 이날 자신이 아인트호벤으로 데려갈 후보로 점 찍고 있는 애제자 愛弟子 김남열을 따로 만났다. 현재 소속 구단과의 문제 본인의 심경들을 알아보기 위한 자리였다. 김남열은 이 자리에서 자신을 스타로 키워준 옛 스승에게 고급 시계를 선물했다. 그러자 이를 본 김삿갓이 가만이 있을소냐.
“누군 좋겄다. 고급시계나 선물 받고 말이야. 나는 고려시대 유물 같은 이 고철 덩어리 시계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데. . . . . . ?”
이를 보고 히딩크의 죠크.
“누가 아니래? 자기도 일찍이 볼이나 차지. 괜시리 뿔딱지만 있어 가지고 시리. . . . .”
하멜이 가끔 약 올리는 김삿갓의 시 한 수 낭송
그대 성도 이름도 모르니
고향 산천이 어디인지 알 수 있으랴
아침이면 파리 떼가 썩은 몸에 달라붙고
저녁에는 까마귀가 조문하듯 울고 가네
한 자 남짓 지팡이가 그가 남긴 유물이고
두어 되 남은 쌀이 빌어먹던 양식일세
앞마을 사람들이여 내 말 좀 들어보소
흙 한 삼태기 날라다가 비 바람이나 가려주게
-- 김삿갓의 시 ‘거지의 시체를 보고’ 全文
서로 자존심을 건드리는 바람에 천하의 삼각편대의 주먹 내밀기와 발 차 돌리기의 샅바싸움은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엘리자베스의 절묘한 애교와 사정으로 일단 가까스로 잠재웠다.
히딩크의 인기를 절감 할 수 있었던 곳은 역시 축구 경기장 이었다. 9월 7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통일 축구 경기에서 히딩크는 관중석이 아닌 벤치에 앉았다. 현직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작전을 지시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전광판에 그의 얼굴을 잡은 영상이 나타나자 관중은 환호성을 올렸다.
“우우우-- 와와와 --"
"히딩크--히딩크--“
“대-한민국 --대-한민국---”
그러나 히딩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특유의 어퍼 컷 세레모니와 반지의 키스를 보내며 넙죽 절을 하였다.
“인사는 잘 한다아-- 히딩크 선생.”
“그으럼 인사도 못하냐?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인증하고 서울시장이 준 시민증이 있다구. 김삿갓 선생 한번 볼래요. 히딩크喜東丘.주민등록 번호 461108-1002016.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 .
아까부터 감정이 있어 시비를 붙는 김삿갓에게 히딩크는 주민등록증을 시원하게 펼쳐 보았다.
네덜란드로의 `귀향` 마지막 날인 그 날 밤.
히딩크는 그의 삼각편대와 엘리자베스를 대동하고 자신이 즐겨 찾던 서울 강남의 재즈 바 `원스 인 어 블루 문‘ 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히딩크는 이 자리에서 직접 드럼을 연주하였는데 이 날 이곳을 찾은 많은 관객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잘 다듬어진 드럼 연주에 감동을 받은 객석의 어느 청년이 즉석 노래를 신청했다.
“히딩크 감독님, 회이팅! 앵콜송으로 ‘프랭크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신청합니다. 가급적이면 엘리자베스 여사님과 함께 말 입니다. 히딩크 웰컴.”
갑작스런 제의에 머뭇거리자. 김삿갓이 권했다.
“해요, 왜 그 18번 드럼연주 잘한 덕분에 앵콜송으로 당신의 노래 18번 ’마이웨이‘를 열창으로 . . . . . .”
“그으럼, 해야지 해요.”
하멜도 옆자리에서 엘리자베스를 일으켜 세우며 권했다.
“오우케이. 탱큐.”
신청을 받은 히딩크가 무대 중앙에 우뚝 섰다.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 운동장 가운데에서 선수들과 우뚝 지존의 자리로 섰을 때처럼 보무도 당당이 섰다. 그 옆에는 엘리자베스가 애교스럽게 마이크를 들고 엷은 미소로 섰다. 프랭크시나트라의 노래 마이웨이 전주가 잔잔히 나오나 객석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짝짝--”
“웰컴 히딩크!:
“마이웨이 앵콜송 탱큐!”
지금 종말이 눈앞에 다가와 / 인생의 마지막 길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내 친구여, 명확히 말해 두겠소 //
확신을 갖고 내 입장을 밝히고 싶소/ 나는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왔고/
모든 길을 다 가보았소//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 이상으로/ 나는 내 인생을 걸었다네./
후회는 조금 있소//
그러나 말 할 수 있을 대단한 것은 아니네 /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달아나지 않고 예외 없이 다 했다네//
적혀있는 코스는 모두 시험했지/ 옆길도 조심스럽게 걸었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 이상으로//
나는 내 길을 걸었네 / 네, 당신도 알다시피/ 삼키지 못할 것을 물어뜯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울 때는 / 그것을 다 먹고 내뱉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직면하고 기꺼이 맞서 / 내 길을 걸었네 / 사랑도 했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지 / 난 만족감도 얻었고, 좌절도 겪었지//
그러나 이제 눈물을 거두니 모든 것이 우습기만 하군/ 내가 그 일을 했다니/ 절대로 소극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아니요, 난 아니오 //
난 내 길을 걸었소 / 인간은 무엇 땜에 있는 것인가/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 것도 없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얘기할 수 있어야 해 / 비굴한 말을 하면 안되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내 길을 걸었다고 기록돼있어/ 그래. 그것이 나의 신생이었네//
-- ‘프랭크 시나트라’ 의 노래 ‘ 나의 길’ 전문
And now the end is near /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 My friend, I'll say it clear/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I've lived a life that's full/ I travelled each and every highway /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Regrets, I've had a few /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 I did what I had to do/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I planned each chartered course /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way/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 I did it, my way//
Yes there were times I'm sure you knew/ When I bit off more than I could chew/
But through it all when there was doubt//
I ate it up and spit it out / I faces it all and I stood tall / And did it my way /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 And now as tears subside I find it all so amusing / To think I did all that and may I say not in a shy way//
Oh, no, oh no not me / I did it my way /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and did it my way//
Yes, it was my way//
-- ‘Frank Sinatra’ ‘ My way’
“오우케이--”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
“오우빠--오우빠--”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재즈 바 `원스 인 어 블루 문‘이 떠나가도록 10여분 장내에 울려 퍼졌다. 김삿갓과 하멜도 일어나 박수를 쳤다. 사회자가 박수를 진정시키고서야 그쳤다. 그가 부르는 톤이 워낙 진지하고 원문에 가깝도록 짙은 음색으로 차분하게 부른 감동적인 노래였다. 박수가 끝이나 조용해지자 사회자가 소개를 한다.
“이 노래는 잘 아시는 것처럼 세계적인 톱 싱어로써 팝 뮤직의 제왕 등 세인으로 부터 끝없는 찬사를 받았던 프랭크 시나트라가 1969년 초에 히트시킨 곡 '마이 웨이(My way)'란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만든 폴 앙카가 직접 불렀지만, 훗날 프랭크 시나트라가 다시 불러 그의 대표적인 노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중후한 목소리로 불러진 이 노래는 지난 30년 동안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런데 월드컵이 우리나라 한국에서 열려 전 세계의 수십억 인구를 감동시킨 세기의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님이 오늘 다시 멋지게 불러 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오우케이--”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 ”
“땡큐--땡큐--”
이날 참석한 객석의 한 시민인 한반도 韓半島(여. 28세)씨는 이렇게 말했다.
“히딩크 감독이야 말로 제가 찾는 멀티 플레이어인 같아요.”
“맞아요, 한 가지 잘하면 다른 것도 잘 한다는데 재능 있고 참 멋있는 남자예요. 호호호--호호호--”
“엘리자베스, 행복하겠어요. 능력 있는 남자랑 함께 있어서요.”
많은 여성들로 부터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송을 받으며 히딩크 일행은 재즈 바 `원스 인 어 블루 문‘을 밤 늦게 빠져나와 호텔로 향 하였다. 그간 4박5일간의 짜여진 일정 때문에 피곤한 몸으로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잤다.
“찌르륵--짜르륵--”
“뚜우우- 뚜우우--”
“에엣-- 피곤한데 누구야?”
“한국 사람들은 새벽 잠도 없나봐?”
계속 울려대는 룸의 벨 소리에 히딩크와 엘리자베스는 잠옷 바람에 전화를 받아야 했다. “무어야?”
“예, 전국에서 선물들이 속 속 도착해서 . . . . . . 그만 . . . . . . ”
“아이 줄려 죽겠는데. . . . . . ”
간소한 차림으로 호텔 로비에 나가보니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호텔 지배인 살펴봐(남.35세)씨는 쌓인 선물 꾸러미를 하나씩 들어 보이며 자랑을 했다.
“허허허--- 많이도 왔구려. 자, 입 안에 착 감긴다는 전라도의 영광굴비 한 드룹, 남자의 양기에 좋다는 충청도 청양의 구기자 차, 향기가 그만이라는 경상도 함안땅의 국화차, 건강에 특효약이라는 강원도 횡성의 율무차, 입안에 살 살 녹는다는 경기도 포천 이동의 갈비 셋트, 인천의 일곱 선녀가 입안의 혀로 토해내 빚었다는 칠선주 七仙酒, 입안이 심심하여 먹는다는 속초의 마른 오징어 한 죽, 집안에 건. 냉을 조절한다는 충북 진천의 참숯 등. . . . . . . 전국의 팔도 특산물이 다 모였구려.”
선물은 이 뿐이 아니었다. 축구 하다가 목 이 마르면 쉴 시간에 마시라고 보낸 백제의 술 ‘한산소곡주’ , 밤 잠이 안오면 엘리자베스 여왕과 둘이서 한 잔씩 마시라고 보낸 신라의 술 ‘경주법주’ , 선수들 지도하다가 말 안듣고 속상하면 마시라고 보낸 고려의 술 ‘문배주’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가지각색의 진귀품이 진상되었다.
특히 엘리자베스의 눈을 확 트이게 한 특산품은 남성 정력제인 비아그라가 아닌 경기도 파주골의 참솟지 사또가 보낸 ‘누에그라’와 전북 고창 선운사의 늘미끌 참봉이 보내온 몸에 좋고 미용에 좋다는 민물장어였다. 이를 본 김삿갓이 그냥 넘어갈리 만무하지.
“엘리자베스 여왕님, 그렇게도 히딩크 감독님의 밤이 염려 되세요?”
“ 그으럼요. 이 분이 어떤 분 인데요.”
“그으럼, 내가 정말 좋은 정력보양주 한 병 가져오라고 하지.”
“그게 뭔데요?”
“히히힛-- 자다가 오줌만 누워도 요강단지가 엎어지는 술 복분주覆盆酒이지요!”
“오머, 그 술이 그렇게 좋아요?”
“그으럼요. 이 술은 산신령 계시로 심심산곡에서 나는 산딸기, 머루, 다래, 오미자를
움푹 파인 바위에 담아놓고는 날마다 치성을 들이면 백 일 후에 발그스레 술로 익지요. 그러면 이 술을 히딩크 감독한테 먹여봐요. 히딩크 감독이 날마다 정력이 넘쳐 엘리자베스 여왕님을 즐겁게 해 그 도가 넘쳐 오줌을 쌀 때마다 요강단지를 엎곤 할테니깐 두루. . . . . .
“허허허--- 김삿갓 선생 이제 약장수 다 되었수.”
“하하하--- 허허허---”
전국 각지에서 보내준 특산물은 꾸러미로 별도로 싸서 인천공항 화물편으로 보내고 히딩크 일행은 통일축구협회에서 마련해준 ‘신나라’ 고급승용차 편으로 공항을 향 하였다. 히딩크는 김삿갓과 하멜, 엘리자베스와 함께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달여 만에 내한 來韓한 한국에서의 느낌과 소감은 참 좋습니다. 전 국민의 전폭적인 고마운 환대에 감사하며 한국의 축구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이번의 남.북 통일 친선축구가 남.북 통일에 기폭제가 되어 1990년 7월 서독과 동독의 막힌 문 ‘브란데부르크 문’ 처럼 저 휴전선도 조만간 허물어지기를 바랍니다.”
“짝--짝--짝--”
“안녕히 가세요. 히딩크 감독님.”
기자회견이 끝나자 통일 축구협회의 정몽쟌 회장이 말한다.
“히딩크 감독님, 이제 출국해야 하니까 한국의 축구 팬들에게 굿바이 라고 인사를 하세요.”
그러자 히딩크는 손을 저으며 일어선다.
“싫어요. 이번에도 굿바이 대신 ‘소롱 코리아’ 라고 말하고 싶어요. 쩡몽짠 회장님.”
“아, 그래요. 하하하--- 또 와야지요. 히딩크 감독님.”
“김삿갓 선생 . 2006년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 때 만나요. 소 - 롱”
“그래요, 잘가요 내 친구 히딩크여. 그 때 만나요. 하멜과 엘리자베스 여왕님도요. 소-롱”
“소 --롱, 소-롱”
히딩크는 소- 롱 을 외치며 나가려다가 멈칫 서서 뒤를 보며 말한다.
“아참, 김삿갓 선생. 죽장에 삿갓 쓰고 오 갈 데 없으면 내 고향 마을인 파르세펠트로 오시오.”
“허허허-- 그으럼 먹여주고 재워 주는거요. 히딩크 감독.”
“아니 무슨 말씀을 천하의 김삿갓 선생이 오신다는데 . . . . . . 내 동네 히딩크 다이크(히딩크 거리)에는 200년이 넘는 피에르체(작은 깃털)라는 펖 주점이 있어요. 이곳에는 쓸만한 내 여자 친구 정열적인 노랑머리인 ‘안센’도 있으니 오셔서 심심 파적 삼아 세월을 낚아 보구려.”
그러자 옆에 있던 하멜이 거든다.
“그렇게 해요. 나도 그곳 ‘펖’에서 하멜 표류기를 쓰고 있으니까 말이요.”
“예, 알겠습니다, 두 분. 감사하고요. 내 그렇게 하리다.”
김삿갓과 정몽쟌 회장 등의 환송 인사를 받으며 히딩크는 하멜과 엘리자베스를 대동하고 수 많은 환송 인파를 뒤로 하고 출국장을 향하여 걸어 나갔다. 이때 저만치 갓을 쓴 어느 선비 하나가 술 항아리를 옆구리에 찬 채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지를 않은가?
“여보시오. 잠깐만, 하멜 선생.”
막 걸어나가던 이들은 뒤를 돌아 보았다. 뛰뚱거리며 달려오는 도포자락의 선비 하나가 있었다. 그 선비는 가까이 다가와 하멜의 손을 잡는다.
“하멜 선생, 나를 모르겠소?”
하멜은 어리둥절해 하며 그의 손을 무심코 덥썩 잡았다.
“나요 나. 제주도 목사 이원진.”
“오오, 지난 1653년 나와 우리 동지들 31명을 네덜란드로 보내지 않고 조선에 13여년 동안 붙잡아 둔 제주목사 이원진?”
“맞아요. 나요 나 이원진. 남제주 안덕면 대평리 앞 바다 울목에서 만났던 당시 제주 관리란 말이요.”
“오오 당신이 이원진 목사 . . . . . .!”
“왜. . . . . . ? 그 당시 나를 고국으로 보내지 않고 우리 동포인 얀센 벨테브레(Jansen Weltevree.박연朴燕)을 조정에서 불러 내랴와 조사하여 조선에 13여년이나 억류시켰소?”
이원진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사람 왕래가 많은 공항 출국장 바닥에 엎드리어 울먹이는 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아이구 이 사람을 용서하시오. 나는 그 때 처 자식하고 먹고 살며 저 높은 조정의 눈치를 보느라고 그만. . . . . . 나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요. 흐흐윽--흐흐윽-- 용서하시오.”
“쳇 . . . . . . 못난 사람 같으니라고. . . . . .”
“그 당시 증인으로 저 김삿갓이란 분이 있었지요. 당시 조정의 어려운 상황을 잘 아시지요.”
김삿갓이 나섰다.
“하멜 선생 용서 하시오. 그 당시 조정의 명령을 지방 관리가 어찌하질 못하는 상황이었오.”
“ . . . . . . ”
이원진 목사가 끝내 엎드리어 울먹이다가 옆 주머니에 옹골차게 찬 술 항아리 하나를 하멜에게 건넨다.
“이것은 우리 제주의 명물인 ‘오메기술’ 이요. 사과의 정표로 이 술 한 병 보내니 히딩크 감독님하고 가시다가 목이 마르면 드세요.”
“오오, 목이 마르면 들라. . . . . . ! ”
“목이 마르면 들라 . . . . . ?”
“허허허 목마르거든 한국을 찾아라!”
김삿갓이 진지하게 말 했다.
“그으럼 . . . . . . 일찌기 인도의 시성 詩聖 타고르 선생이 말했지. 여명기로부터 깨어 일어나 언젠가는 동방의 찬란한 등불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시를 기억해야 되어요.”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 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 인도의 시인 타고르 시 ‘동방의 등불’ 전문
히딩크와 하멜, 엘리자베스 일행은 따스하게 비추는 한국에 가을의 햇살과 파아랗고 높은 하늘을 쳐다보며 비행기 트랩에 천천히 올랐다. 대한민국의 절친한 친구 김삿갓이 방금 헤어지며 들려준 인도의 시인 ‘타고르’ 시 ‘동방의 등불’을 암송하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으로 향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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