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뒷골목 주점 시인통신
‘有酒有藥, 無酒無藥’
술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고, 술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는 뜻의 이 말은 내가 자주 가던 문학청년 시절 종로 청진동의 명물 ‘시인통신’의 벽에 덕지덕지 얽히고 설켜 있는 낙서 중의 한 마디이다.
광화문 교보빌딩 뒷 골목으로 10여 미터 들어가노라면 막걸리집인 열차집이 보이고, 좌측으로 꺽어 들어가면 허름한 문칸방이 보인다.
두어평 됨직한 이곳이 8년여 동안 이어져온 카페 시인통신이다.(지금은 인근의 길목 좋은 터에 자리를 잡아 성업중 이다)
본래 시인 박종수 선생이 운영하던 것을 소녀시절 문학에 심취했던 중년 여인 한귀남씨가 인수하여 많은 시인 묵객들을 상대로 막걸리와 맥주를 내놓는 자칭 타칭 민족주의자들의 사랑방 이다.
돈 없고, 빽 없는 가난한 문인들이 몰려와 한 잔 술에 꺼이꺼이 우는가 하면, 밑둥이 썩어들어 갈듯한 구 한옥 집의 허름한 집이 떠나갈 정도로 뜨거운 이념논쟁에 주먹다짐까지 해대며 떠들어대니, 주위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랑대는 묘한 집으로 오인되어 한 때는 당국의 시찰업소 리스트에 올라 드나드는 사람들까지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즐겨찾는 사람들은 줄잡아 3백여명 되는데 이 중에는 무세중, 이외수, 중광, 황필호, 김흥성, 천상병, 이호철, 정건섭, 유안진, 허영자, 이생진, 오인문 ,최승호 등 문인, 화가, 교수, 스님, 언론인 등 각계 각층을 총 망라 했다. 취향에 맞는 술을 마시다가 취하면 탁자 위에서 그냥 머리를 박고 잠을 자도 되고, 노래를 불러도 되며, 돈 없으면 외상도 마음대로 하니 그처럼 편할데가 어디 있겠는가. 집에 갈 버스표도 하나쯤 손에 쥐어주는, 이들의 누님이자 연인인 한귀남씨가 가장 난처한 때는 어디서 고주망태가 되어 와서는 혼자 자는 방에 들어가 잔다고 우길 때라고 한다.
테이블 4개로 비좁은 공간이건만 천장과 사방 벽은 온통 낙서판이다.
마치 대학가의 학사주점이나 선술집을 연상케 한다. 휘갈겨 쓴 낙서를 대충 훑어보면 이렇다.
“죽으면 죽었지 지금 죽을 수는 없다.”
“소주는 짧고 맥주는 길다.”
“사람 중에 깨어있는 것은 입 밖에 없다.”
“오늘도 하늘을 내려와 내 술잔에서 풀어지는 여인이여!”
“허무, 그 단단한 놈!
“대머리 한씨의 계보를 찾아서 . . . ”
“물은 개나 마시고 술은 인간이 마신다.”
단골 손님중 신인 한 사람이 쓴 낙서를 보면 또 이렇다.
“오늘따라 누님이 너무 아름다워서 개수작 했습니다. 누님은 여전히 누님이고 강물은 저렇게 흘러 갑니다!”
허허허--- 그 날의 해프닝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한귀남씨는 이곳을 찾은 귀여운 악동(?)들에 얽힌 에피소드와 애환을 담은 시인통신이라는 수필집을 낸 바 있다.
또한 성금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시인통신 문학상 제도를 추진하여 힘 없고 가난한 이 시대의 문인들을 위한 창작의 촉매제로 활용하였으면 한다. 이런 것들이 한 때 문학 소녀였던 그녀의 칠 할이 바람인 것이다.
텁텁한 막걸리 몇 잔에 요의 尿意 를 느끼고 끼일 듯 좁은 화장실에 들어서니 그곳에 살아 꿈틀대는 낙서 한 줄이 눈에 화악-- 들어온다.
“잘 사는 놈이 법을 지킬 때 못 사는 놈은 기분이 좋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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