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 수교 15주년 맞아 순수 민간단체에서 문화교류 펼쳐 눈길 -
중국연변작가연맹과 개인작가 결연, 양국 작가 저서 6권 합동 출판회
대금, 가야금, 기타연주, 시낭송, 문학강의 등 고유의 한국문화 홍보
대전 중구 산성동 140-34
한국해외문화교류모임
전화(042)581-0151/017-477-1744
올해는 19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한․중 수교를 맺은지 15주년이 되는 의미깊은 해이다. 우리나라와 중국과는 역사적, 지리적, 환경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가장 밀접한 나라이다.
특히 근래 중국으로의 유학과 사업, 문화 체육 등 활발한 교류와 함께 한류열풍이 일고 있는 가운데 순수 민간단체에서 중국연변과 문화교류의 물꼬를 트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해외문화교류모임(대표 김우영 작가. 장편소설 ‘월드컵’ / 연구저서 ‘우리말 나들이’ 저자)은 8월 4일(토)까지 5박 6일간(목) 연변문화연구소(소장 리임원. 시인)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이 모임은 그간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희석 한국영농신문사 대표이자 작가(서울)와 채정순 동시작가(대전), 윤행원 수필가(경기 평택), 조문자(경기 가평), 손중하 전 대문초등학교 교장(대전), 은희태 시인 겸 전 정읍여고 교감(전북 정읍), 강옥희 . 김근수 시인(대전)등과 김주태 대금연주자(이생강류 이수자), 김영순 국악인(대전), 김동현. 김영태 삼성뮤직클럽원장이자 키타리스트, 한혜원 가수(대전)와 허순행 비디오 작가(충남 서천)등이 국악인, 연주인, 가수, 밸리댄서 등 15명이 동행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연변조선족들한테 선 보일 예정이다.
또한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중국측 해외이사인 연변방송국 문학부 구호준 프로듀서(수필가. 평론가)를 비롯하여 김춘련 이사(작가. 요령성 조선사범대학 한국어과 교수), 김성우 이사(북방시조협회 회장. 흑룡강성출판사 심열위원), 구용기 이사(하얼빈시 송화강잡지사 주간), 전경업 (길림성예술관 부관장)등이 공동으로 기획하여 행사를 펼친다.
그리고 중국 연변의 참여진은 김영춘(여류시인. 연길시 TV방송국 프로듀서, 김현순(시인. 연변인민출판사 ‘아동문학’지 주간), 박문파(시인. 연변인민출판사 ‘중학생’지 기자), 김경희(여류시인. 도문시 세무국 공무원), 김철호(아동문학가. 연변일보사 문화부 기자), 심예란(여류시인.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위원회 근무.공무원), 정호원(수필가. 연변인민방송국 문학부 부장), 류흥식(소설가. 연변문학 부주간), 리임원(시인. 연변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심명주(여류시인. 종합신문 기자) 등이다.
이번 행사 주요일정은 8월 4일 인천을 출발 하얼빈 목단강을 시작으로 발행성터를 경유 경박호 빈관에서 한.중 양국의 작가들과 상면식을 갖고 연변으로 옮겨 양국 작가의 저서 합동출판회, 세미나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치고 9일 귀국한다.
첫날 5일 경박호 빈관에서 한국의 김우영 작가와 김성우 북방시조협회 회장의 진행으로 행사가 열린다. 이때 김우영 작가의 ‘우리말 나들이’와 채정순 동시작가의 ‘동시이론’ 강의가 이우러진다.
또 중국측에서는 김성우 시인의 ‘시조창작에 관하여’와 구호준 작가의 ‘수필창작의 바른 리해와 중국 조선족수필문단에 대하여 진맥’ 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강연이 이루어진다.
이 행사 중간 중간에는 대금연주와 가야금연주, 시낭송, 기타연주, 노래, 밸리댄스 등이 고르게 공연되어 흥겨운 문화교류의 장을 펼쳐나간다.
또 이날 한국의 문화단체와 중국의 문화단체가 문화교류협정식을 맺고, 이어 개인별 작가들이 결연을 맺고 미리 준비해간 선물을 서로 주고 받으며 감사패도 교환할 예정이다.
이어 다음날은 중국작가들과 함께 서로 흐믓한 대화를 나누며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바라보며 한민족의 정기와 기상을 드높히는 민족애를 다질 예정이다.
8월 7일에는 연길시 대우호텔에서 한.중 문화교류 및 학술세미나를 갖는다. 리임원 연변문화예술연구소장과 김성호 문학평론가의 중국연변문화에 대하여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한국의 김우영 작가와 윤행원 수필가 ‘나의 수필창작론’의 강의가 이우러진다.
이 날은 한국의 작가 3명과 중국연변의 작가 3명이 동시에 책을내고 합동출판기념회를 갖는다. 한국의 김우영 작가의 ‘우리말 나들이’와 자전적 엣세이 ‘부부’를 비롯하여 채정순 동시작가의 ‘신나는 우산’과 김주태 시인의 ‘대금부는 나그네’를 각 각 중국 연변현지에서 출간하였다.
반면 중국연변측에서도 구호준 작가와 한영남 작가, 림금산 작가가 자신의 저서를 출간하고 한국의 작가들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하게되는 것이다.
이 행사에도 역시 대금연주와 가야금연주, 시낭송, 기타연주, 노래, 밸리댄스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루어져 문화교류를 통한 양국 작가들의우의를 다진다. 또 이날도 양국의 문화단체 개인별 작가들이 추가로 결연을 맺고 미리 준비해간 선물을 나누어 갖는다.
한.중 해외문화교류의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서 중국 연변방송국의 구호준 프로듀서는 합동출판회를 마련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조선족들은 읽을 책이 별로 없습니다. 작가가 책 한권을 출판하려면 1년 8개월 월급에 해당되는 돈을 마련해야 합니다. 서점에 가도 문학도들이 읽을 책마저 결여된 상태입니다. 책이 없으니 사람들은 서점으로부터 멀어지고 어쩌다 한 권 나와도 책이 별로 팔리지도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작가들이 연변에 와서 책을 출판하고 발행식을 갖는다는 것은 자못 의의가 깊습니다. 아직 연변에서 모든 매체를 동원하여 발행식을 한 한국작가는 없습니다. 이번에 한국의 김우영 작가 일행이 첫 스트를 뗀다면 앞으로 중국조선족문학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중국도 새로운 문화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한국 작가들만 출판식을 하기보다는 한 ․ 중 문화교류의 장에서 한국의 작가 3명과 연변작가 3명이 나란히 출판하는 이번 행사가 더욱 뜻 깊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연변지역 서점만이 아니라 동북삼성(요령성, 흑룡강성, 길림성) 도서관에 보낼 예정입니다. 또한 연변작가협회도서관, 연변자치주도서관, 연변대학도서관, 과학기술대학도서관, 려명농업대학 도서관, 8개현시 도서관, 할빈도서관, 목단강도서관, 심양도서관, 절강도서관 등에 보낼 예정입니다. 이렇게 도서관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을 경우 앞으로 중국의 새로운 문화시장을 갖는데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한국해외문화교류단과 중국연변작가 일행은 8월 8일(수)연길시 화룡촌 민가에 들어가 하루동안 자면서 농촌체험을 한다. 이때 연변문화예술연구소 리임원 소장으로부터 간도(연변일대)에서 1백여년간 살아온 우리 조선족의 기나긴 아픔의 역사를 직접 듣는다.
또 교류단은 중간에 문화탐방을 하는데 백두산과 윤동주 생가, 윤동주 묘소, 용드레우물, 명동중학교, 두만강변(북한변경) 도문시, 발해성터, 김좌진 장군 기념관, 김좌진 장군이 순사한 곳, 경박호 유람구 등(용드레우물은 우리민족이 처음 월경(越境)하여 왔을 때 판 유서 깊은 우물)등 간도일대의 둘러본다.
이 모임을 주선하고 있는 김우영 대표는 이번 모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순수한 민간단체 모임인 우리 ‘한국해외교류회’의 중국 연변방문 목적은 한.중 관계가 날로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한민족간 교류하기 쉬운 문화예술분야로 친교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올해 이 행사를 마치고 내년에 상반기에 중국 연변의 작가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행사를 갖습니다. 또 내년 가을에는 미국 미주문인협회 문인들의 초청으로 한인이 많이 사는 로스엔젤스와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문화교류를 할 예정입니다.”
이 행사에는 한국의 문화단체인 한국농촌문학회와 한국영농신문사, 계간 문예마을사, 계간 문학세상사, 대전삼성뮤직클럽이 함께한다.
또 중국 연변에서는 연변방송국, 흑룡강성출판사, 문화예술계총연합회, 흑룡강성신문사, 연변문화연구소, 연변인터넷방송국, 북방시조협회, 송화강잡지사, 도라잡지사 등이 참여를 한다.
- 행사주관자 연락처 :
․ 한국-김우영 : (301-132)한국 대전시 중구 문화2동 449-15.
전화 042.585-4955 핸드폰 017-477-1744
․ 중국-구호준 : (133000)중국 길림성 연길시 국자가 166호 연변인민방송국
문학부 직장 0433-2516547. 핸드폰 13321447144
(참고자료)
․연변에 대하여?
중국 연변의 연길시와 그 주변 지역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된 연변은 연길시와 훈춘시, 용정시, 화룡시, 도문시, 돈화시, 안도현, 왕청현 등 6개시 2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2001년 통계수치로 2백18만7천여명이며 그 중에서 조선족은 84만여명으로 38.4%를 차지한다. 면적은 길림성 전체의 23.7%인 42만7백㎢이다. 이는 중국 전체의 0.45%에 해당되며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도를 합친 것보다 넓다. 동쪽은 러시아와 232.7km, 남쪽으로는 `조선`과 522.5km의 국경선이 있다. 서쪽은 길림성의 백산시와 길림시, 북쪽으로는 흑룡강성의 목단강시와 인접한다.
기후는 북온대 대륙성계절풍에 속하여 봄에는 건조하고 바람이 많으며 여름에는 덥고 비가 많다. 가을은 서늘하고 비가 적으며 겨울은 춥고 길다. 동부는 바다와 가깝고 서부와 북부 지방은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위도와 해발이 같은 다른 지방에 비해 비교적 겨울 기온이 높고 여름 기온이 낮은 편이다. 특산물은 산삼과 사과배, 송이버섯, 녹용, 웅담이 있다. 특히 사과배는 연변에서만 생산되는 특산물이다. 둥글고 불그레한 색깔이 사과와 비슷하고, 달고 시원한 맛은 배와 흡사하다. 봄이면 하얀 꽃구름처럼 물결을 이루고 가을이면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배 과수원의 모습은 연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이다.
연변은 고구려와 발해 시기에는 그 영토에 속해 있어서 당시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1909년 일제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그 땅의 영유권을 청나라에 넘긴 뒤에도 독립 운동가들이 항일운동의 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가 된 곳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 공산당의 소수민족 정책을 알아야 한다. 민족평등, 민족단결, 민족공동번영은 민족정책의 총체적 원칙이었다. 이 원칙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민족구역자치제도라는 정책으로 구현되었다. 이는 각 소수민족이 그들의 거주지방에서 국가의 통일적 지도 하에 자치기관을 설립하고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중국에는 5개의 자치구와 30개의 자치주, 124개의 자치현 등 모두 159개의 민족자치지방이 있는데, 조선족의 경우는 2개의 자치지방을 갖고 있다. 하나는 잘 알려진 연변조선족자치주이며 다른 하나는 이보다 급이 낮은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세 번째로, 1952년 9월 3일 탄생한 연변조선민족자치구는 헌법 개정에 따라 1955년 12월 자치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새로운 이주지에서 큰 역할을 했다. 청나라가 2백여 년간 봉금지역으로 묶어 둔 불모지를 피땀 흘려 논밭으로 일구었으며 목숨을 바쳐서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어 그 땅에 뿌리를 깊이 내렸다.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도 이주 조선인들은 크게 공헌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뒤 공산주의 혁명과 토지개혁에 적극 참여했고, 중국 통일전쟁 때에는 큰 희생을 치르면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기여했다. 이 결과 조선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인정받아 자치 지방도 갖게 된다. 중국 역대 정치 지도자들은 대부분 연변을 방문하여 조선족자치주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조선족 자치주도 전국 30개 자치주 가운데 유일하게 국무원으로부터 `민족단결 진보모범자치주`로, 1994년에는 국가문화부로부터 `전국문화모범자치주`로 명명 받는 등 훌륭한 자치주로 발전시켜오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
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94% 이상을 한족(漢族)이 차지하고 있으며, 장족, 회족, 묘족, 만주족 등 55개의 소수민족이 나머지 6% 정도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 인구 84만여명의 조선족은 38.4%를 차지한다.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의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등 삼성(三省)과 그 밖의 중국땅에 흩어져 사는 한족(韓族)혈통의 중국 국적의 주민을 말한다.
한말(韓末)에 외세의 침노로 한국의 국권이 흔들리면서 나라 안팎이 어지러워지자, 새로운 생활 터전을 찾아 조국을 등지고 둥베이 지방과 러시아의 시베리아로 이주해 가는 한국교포의 수가 갑자기 늘어났다. 이 유민(流民)의 행렬은 나라가 일제에 강점되면서 더욱 늘어났다. 토지조사 등의 명목으로 일제가 한국인의 농토를 강제수탈하자 땅을 잃은 농민과 생업을 상실한 유랑민은 더욱 그 수효가 늘어나서 전국에서 만주(滿洲)로 이주해갔다.
이 유민의 대열에는 조국 광복과 국권회복을 다짐하며, 독립투쟁을 하기 위해 조국으로부터 망명해 가는 독립운동가도 많았다. 여러 경로로 만주땅에 이주하여서 불모지를 개간하고 산림을 개척 어렵게 생활 터전을 닦아 나갔다. 한인 마을에는 독립군이 뿌리를 내렸고, 갖은 고초를 겪으며 교민들의 개간생활과 조국광복을 위한 독립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일제에 의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만주가 개척되면서 한국인의 이주는 더욱 활발해졌다. 한국 생산의 쌀을 일제가 수탈해 가니, 절량(絶量)에 허덕이는 한국 농민은 개간할 황무지가 있는 만주로 몰려갈 수 밖에 없었다. 8·15광복으로 일제가 패망하였을 때 본국에 생활근거가 없는 조선인이 조국 귀환을 못하고 만주에 남게 되었다. 이들이 조선족의 1세대요 거기서 난 자손이 2세대들이 되었다.
조국이 3·8선 때문에 남북으로 갈리고, 이념과 체제가 다른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자, 조선족의 일부는 중국과 가까운 북한으로 들어갔고, 상당수의 조선족은 그대로 둥베이 지방을 비롯한 중국땅에서 생활을 해오고 있다. 현재 독립운동가의 유족들을 포함한 약 200만 정도로 추산되는 조선족은 국적이 중국인이므로 소수민족으로서 정착해 열심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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