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악령?
나은 서울의 일제 때 이름은 ‘경성’(京城)‘이다. 본래의 뜻은 ’서울의 잣(성)‘이다. 조선 때의 ‘한성’을 1910년에 일제가 ‘경성부’로 바꿔 부르기 시작하여 경성이라고 했다. 정부는 광복 후 ‘서울’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경성중학교’가 ‘서울중학교’로 바뀌고, ‘경성(제국)대학교’가 ‘서울대학교’로 바뀌었다.
일본이 황국신민으로 세뇌하려고 1941년부터 일본과 한국, 대만의 ‘소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변경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마자 일본과 대만에서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없애고, ‘소학교’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늦장을 부려 1995년 50년만에야 힘들게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어 불렀다. 물론 정부조직에 남아있는 친일세력의 준동 때문이다.
일제 때 ‘경평 축구’라는 게 있었다. 이것은 경성과 평양의 대항 축구 경기이다. 이는 서울과 평양의 축구경기이니까 ‘서평축구’라고 해야 한다. 만약 ‘서울대학’과 ‘평양대학’이 축구경기를 하면 ‘경평대학 축구경기’라고 할 것인가? 그런데 왜 아직도 경평축구인가?
그 뿐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기간산업인 ‘경부선, 경원선, 경의선, 경인고속도로, 경춘가도’라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서부선, 서원선, 서의선, 서인고속도로, 서춘 가도’로 바꾸어 불러야 할 것 아닌가?
지금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악령(!)에서 언제 벗어날 것인가?
이 메 일 siin7004@hanmail.net 문학카페 http://cafe.daum.net/siin7004
|
'전체폴더(플래닛) > 고.오완영 및 문인들의 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봄 (0) | 2007.04.28 |
---|---|
한중 문화교류 20명 한하여 접수 (0) | 2007.04.25 |
쓰레기 배출 (0) | 2007.04.21 |
오완영 시인의 '논어로 푸는 세상' 술이(述而) <18> (0) | 2007.04.12 |
전인철시인의 "마운틴 오르가슴" (0) | 2007.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