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인간의 세 가지 조건
사실 풍류라는 주제로 동서 남녀를 엮기란 쉽지 않다. 풍류란 우리 문화의 독특한 어휘다. 풍류라는 어휘에 그나마 가까운 영어는 ꡐ취향ꡑ(taste)이다. 취향이라는 어휘는 주체로서의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세속적인 말이라는 점에서 풍류보다 한참 격이 떨어진다.
풍류란 세련된 취향 이상의 그 무엇이다. 신라의 최치원이 정의했다는 ꡐ현묘지도ꡑ(玄妙之道)를 새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풍류란 독특한 멋이 있다(흥미롭게도 ꡐ화랑도ꡑ는 ꡐ풍류도ꡑ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시대 동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풍류의 조건은 세 가지 정도 아닐까. 첫째, 열정에 대한 상상력(사랑에 대한 태도가 어떤 것인가). 둘째, 지적 상상력(인문적 깊이가 있는가). 셋째, 예술적 상상력(예술 매체를 통해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조건으로 본다면 두 남녀는 탁월한 풍류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예술적 상상력에서 피카소에게 당할 자 누구인가. 그가 남긴 5만여 점의 작품 수에 기죽지 않더라도, 자신이 만든 표현을 스스로 깨뜨리면서 창조적 파괴를 거듭했던 피카소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말이다. 황진이의 수준은 몇 수 남은 시작(詩作)으로 상상해볼 수밖에 없지만 기녀(妓女)란 기예(技藝)의 달인 아니던가.
황진이와 피카소의 지적 상상력은 그들을 독특한 위상의 예술인으로 만들었다. 피카소는 예술적 표현을 정치적 발언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스페인 내전을 그린 ꡐ게르니카ꡑ(1937)로 월드 평화주의자로 부상했고, 그 명성 덕에 피카소를 혐오하던 히틀러의 치하 파리에서도 온전한 생활을 누렸으며 열광적인 스탈린 지지자였는데도 냉전 시대에도 별 비판을 받지 않고 넘어갔다.
ꡐ아비뇽의 여인들ꡑ(1907)이 철학자와 수학자들의 상대성 논쟁을 촉발했던 것도 ꡐ이미지 하나가 1,000마디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ꡑ는 속설이 적중하는 예다.
일개 기생이 ꡐ송도삼절ꡑ(松都三絶․황진이․박연폭포․서화담)의 한 축이 된 것은 신기한 일이다. 풍류 도시 송도 특유의 도시 마케팅 전략이었는지도 모르고, ꡐ화담학파ꡑ의 대모적 역할을 인정했던 당대 지식인 또는 황진이에 대한 남성 지식인들의 흠모가 작용했을 수 있다.
멸망한 왕조의 수도 송도의 개방적 학풍 덕택이었을까. 남아 있는 시는 시조 6수, 한시 4수에 불과하지만 한시를 지을 수 있었던 시인 황진이를 인정했던 것일까. ꡐ해어화ꡑ(解語花, 기생을 일컫던 말)라는 표현처럼 ꡐ말을 하는 아름다움ꡑ으로서의 황진이가 대중의 감성을 자극했던 것일까.
역시 황진이와 피카소를 탁월한 풍류 인간으로 떠오르게 하는 것은 이들의 열정에 대한 태도, 즉 남녀 관계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이다. 황진이는 ꡐ한국 남성의 영원한 애인ꡑ이다. 모든 설문에서 항상 1위다. ꡐ국민애인ꡑ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면, 황진이는 그야말로 국민애인이다.
황진이가 없었던들 한국 남성은 과연 꿈꿀 여인조차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피카소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ꡐ뭇 남성의 우상ꡑ이다. 절륜한 정력 때문일 터이고, 수많은 여성편력 때문일 터이고, 여성의 에너지를 자신의 작업 에너지로 흡수 발산했던 그 에너지 호환 능력 때문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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